그때의 나? 별거 없었다. 별거없는 일상, 별거없는 학교, 별거없는 나. 평화로워서 좋았다. 그랬었지.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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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아침. 바엘의 방. -
밖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뭐야...몇신데 벌써 깨우는 거냐고...
베개를 뒤집어쓰고 죽는 소리를 내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 등을 약하게 때렸다. 그에 반응해서 몸을 일으키자 내 동생 파이로가 보인다. 우린 쌍둥이다. 얼굴만 보면 파이로와 나는 다를게 없어보인다. 뭐, 머리 스타일로 구별중이기는 하지만. 여튼 나는 내 앞에서 가만히 나를 보고있는 파이로를 향해 말한다.
"야. 넌 형을 그렇게 깨우냐?"
반쯤 졸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파이로는 킥킥 웃더니 내 팔을 잡아끈다.
"일어날 줄은 몰랐는데? 빨리 밥이나 먹자."
어영부영 넘어가려는 그녀석에게 가벼운 알밤을 먹여주고 일어났다. 머리를 감싸쥐고 툴툴거리는 녀석을 뒤로하고, 구워져서 접시에 올라가있는 식빵을 입에 물고 문을 나선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날 학교는 평소와 다를것 없었다. 똑같이 별거 없었지 뭐. 학교가 파하자마자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세니라고 하는 여자아이와, 그 친구인 루즈라고 하는 여자아이가 내 앞을 막아선다. 세니는 어렸을때부터 친했었다. 루즈는 이번에 알게 된 친구고. 여튼 갑자기 막아서는 바람에 당황한 눈빛으로 보고만 있었더니, 세니가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오늘, 오랜만에 바엘 집에 가보려고!"
잠시 멍해있다가 왜? 라고 물어보자 상담할게 있다고 한다. 뭐, 어렸을 때부터 친했으니까. 그 정도는 껌이지.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고는 루즈라는 친구를 먼저 보내고 내 옆에 따라붙는다. 같이 떠들면서 걷자니 벌써 집에 도착해있었다. 일단은 안으로 들어가서 대충 인사를 하고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좋아. 이제 상담할게 뭔지 말해봐."
혹시 연애? 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큭큭 웃고 있는데, 세니가 우물쭈물 거리더니 입을 연다.
"스토커가 날 따라다녀..."
뭐? 스토커? 그 변태같은거? 뭐야, 꽤나 심각한 문제잖아?
아까까지 속으로 웃었던 나를 책망하고 있는데, 갑자기 파이로가 안으로 들어온다.
"형 나왔...어? 세니누나도 와있었네? 오랜만이다!"
노크도 없이 들어와서는 갑자기 상봉을 하는 녀석들을 보며 피식 웃어버렸다. 그렇게 신나서 얘기하던 파이로는 보여줄게 있다며 자기 방으로 따라오라고 한다. 이럴땐 나만 뻘쭘히 있기 뭐하니까 일단은 따라가봤다. 손재주가 좋은 파이로가 보여준건 직접 제작한 강철 너클. 단면도 깔끔하고 강철이라서 반짝반짝 빛나기도 한다. 파이로의 솜씨의 감탄한 나와 세니. 난 말 없이 엄지손가락을 올려보였고, 세니는 의자에 앉아있는 파이로를 끌어안으며 해맑게 말한다.
"뭐야, 완전 멋있네! 파이로한테 시집갈까?"
...참고로 파이로에게 강철 다루는법을 알려준건 나다. 그것 때문이었을까, 괜히 질투심이 났다. 가르친건 난데 왜 파이로가 주목받는걸까. 단기간에 날 따라잡았기 때문에? 이유가 어쨌든, 난 그때 질투심을 꼈기 때문에, 그냥 주제를 넘기기로 했다.
"그것보다, 세니 너 스토커가 붙었다며?"
갑작스레 주제를 넘겨버리자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세니와, 이야기를 듣고 놀란 표정을 짓는 파이로. 심각한 분위기에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일단은 호신용품을 사러가자. 작은 전기충격기 같은거."
내 말에 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나서려 하는데, 파이로가 우릴 불러세운다.
"잠깐만. 그런 작은 걸로는 기절시키지 못할지도 몰라. 누나한테는 더 강한 충격기나 큰 소리를 낼만한 호루라기를 사는게 나을거야."
내 생각보다 더 좋은 생각을 낸 파이로의 의견을 듣고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세니. 그리고, 아까 생겼던 질투심이 또다시 생겨나 버렸다.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내 입은 이미 까칠한 말투로 말을 한다.
"그렇게 잘 알면 네가 가든가."
갑작스런 말투에 당황한 둘. 파이로는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난 그냥 어서 가라고만 했다. 마음상한 표정으로 둘은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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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창 밖을 바라보니 루즈가 옆집인 세니의 집 앞에 서있는걸 봤다. 뭘 전해주려고 간건가?
일단은 밖으로 나가서 그녀를 만났다. 왜 왔냐고 물어보자, 그냥 전해줄게 있다고만 해서 그 둘은 지금 호신용품을 사러 갔다고 했다. 그리고 루즈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질문을 한다.
"혹시, 세니와 사귀고 있는거야?"
갑작스런 이상한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까 세니가 한 말을 기억하고는 손을 젓는다.
"아니, 그 녀석은 파이로랑 사귀는거지."
물론 농담이다. 그만큼 둘이 사이가 좋다. 라는 말을 농담 섞어서 말한것이다. 여튼 그렇다고 하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서 천천히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서 골목길에 문득 시선이 갔다. 거기에 있는건.....스토커. A였다. 몸을 숨기고 고개만 내밀어서 이쪽을 보다가 내가 알아챈걸 눈치챘는지 몸을 홱 돌려서 도망을 간다. 하지만 저런 위험한 녀석을 놓칠 수는 없지!
나는 최대한 빨리 달려서 둔한 그녀석을 쫓아가 넘어트렸다. 그리고 재빨리 빼앗아 흉기가 들었을 가방을 뒤집어본다. 하지만...그저 필기도구들만 나올 뿐. 흉기는 있지도 않았다.
"저..전 그냥 세니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뿐이라고요!"
불신하며 계속해서 캐물어봤다. 그녀석이 하는 말은 전부 아까 들었던 것과는 달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건, 중학교때 칼부림 사건. 그건 친구와 절교한 루즈 자신이 했던 일이라고...A가 말해줬다.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 루즈가 가는곳은...
나는 필사적으로 달리면서 파이로에게 전화를 걸었다.
"파이로! 세니랑 도망쳐! 어서!"
내 말의 뜻을 알 리가 없는 파이로와 세니는 아마 멍하니 서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들려오는 루즈의 목소리. 늦었다. 하지만 달리는걸 멈출 수는 없다. 그 둘이 도망만 잘 친다면, 내가 막을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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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없었다. 내가 갔을때는 이미 한 사람이 죽어있었다. 그리고 죽은 사람은...파이로였다.
"아...아....으아..으아아아!!"
굵은 비가 쏟아지는 날씨. 경찰에게 체포되어 연행되는 루즈. 비를 피해 앉아서 겁먹은 표정을 하고있는 세니. 바닥에 떨어진 피묻은 식칼. 그리고 구급차에 태워지는 파이로. 아까 들어보니...즉사라고 한다...파이로가.....죽었다. 믿을 수 없었다. 파이로는 똑똑한 녀석인데...나보다 그녀석이 살아있어야 하는건데...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속에 떠오른다. 며칠동안 난 먹지도 않았고,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그러다가 한가지를 결심하고 밖으로 나선다. 난 사라지자. 파이로는 살아있어야 하는거야.
그리고 미용실에서 머리를 짧은 댄디컷으로 잘랐다. 파이로가 매일 하던 머리. 옷도 파이로가 평소에 입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고, 내가 아무리 그래봤자 파이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이유가 아니다.
난 파이로가 만든 강철 너클을 들고, 며칠동안 악착같이 수련만 했다. 그리고 여행을 떠난다는 메모와 함께 집에서 나왔다. 파이로의 모습을 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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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페이그 파이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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